2026-06-08

초여름 무더위가 시작되면 원룸이나 빌라, 아파트 등에서 에어컨 누수를 둘러싼 갈등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겨우내 방치해 뒀던 에어컨을 오랜만에 가동했다가 뒤늦게 고장을 발견하거나 기기에서 물이 새는 누수 문제가 발생해 아랫집에도 영향을 끼치는 2차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수리비나 도배 비용 책임을 서로 떠넘기다 결국 진흙탕 싸움으로 확대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명확한 법리적 기준을 파악하고 초기부터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에어컨 누수로 인한 피해가 발생했을 때 손해배상 청구 대상은 누수의 원인에 따라 달라진다. 가장 흔한 갈등은 임대인과 세입자 간의 책임공방이다. 우리 민법 제623조에 의하면 임대인은 임차인이 목적물을 계약 내용에 따라 사용·수익하는 데 필요한 상태를 유지해 줄 의무(수선의무)를 부담한다고 정하고 있다. 판례는 이를 근거로 임차인이 별다른 비용을 들이지 않고 손쉽게 고칠 수 있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수선하지 않으면 계약 목적에 따른 사용·수익이 불가능한 정도의 파손이라면 임대인에게 수선의무가 있다고 본다.
이 기준에 따르면 에어컨의 경우 컴프레서(압축기)나 메인보드 등 핵심 부품의 고장, 배관 노후로 인한 냉매가스 누수와 같이 그 자체의 기능에 본질적인 문제가 발생한 경우는 대규모 수선에 해당하여 임대인이 수리 책임을 부담한다. 이는 에어컨이 현대 주거 생활의 기본적 설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반면, 리모컨 배터리 교체, 필터 청소, 단순 냉매가스 충전과 같이 간단한 유지·보수나 소모품 교체는 소규모 수선으로 보아 임차인이 부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세입자가 배수 호스를 임의로 변경하거나 응축수 통을 제때 비우지 않아 물이 넘쳤다면, 이는 임차인의 관리 소홀(선관주의의무 위반)에 해당하므로 임차인에게 배상 책임이 돌아간다.
하지만 모든 누수 책임이 임대인과 세입자 사이에서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아파트 등에서 개별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세대의 에어컨 배출수가 모여 흘러가는 공용 배수관이 이물질로 막혀 세대 내로 물이 역류한 것이 원인이라면, 이때는 공용부분의 관리 책임을 지는 입주자대표회의나 관리사무소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한다.
또한 신축 건물의 경우 시공사를 상대로 한 법적 대응도 짚어봐야 한다.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아파트나 오피스텔에서 시스템 에어컨 매립 배관의 구조적 결함이나 방수 공사 불량으로 누수가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세입자 등의 과실이 아닌 시공 불량이므로, 분양사 및 시공사를 상대로 직접 하자보수를 요구하고 2차 피해에 대한 배상을 청구해야 한다.
그렇다면 당장 무더위에 고통받는 세입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무작정 내 돈으로 수리부터 할 것이 아니라, 수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고장 부위 사진 및 영상과 함께 책임 주체(주로 임대인)에게 보내 내용증명 등으로 명확히 통지해야 한다. 통지 후에도 임대인이 상당한 기간 내에 수리를 해주지 않는다면, 임차인이 먼저 자비로 수리한 후 그 비용을 임대인에게 청구할 수 있다. 이는 임대인의 수선의무 불이행에 따른 비용 청구이며 판례는 이를 필요비 상환 청구로 인정하기도 한다. 만약 임대인이 끝내 비용을 지급하지 않는다면 임차인은 수선이 이루어질 때까지 에어컨을 사용하지 못해 입은 손해의 비율만큼 차임 지급을 거절할 수 있으며, 지출한 수리비용 채권은 임대차 계약이 종료될 때 반환받을 보증금에서 공제할 것을 주장할 수 있다.
법무법인 대륜 신혜진 변호사는 “반대로 임대인 입장에서 세입자가 일방적으로 고가의 사설 업체를 부른 뒤 과도한 수리비를 청구하거나 월세를 차감하는 상황을 마주했다면 이를 무조건 수용할 필요는 없다. 이때는 누수 탐지 업체나 수리기사에게 고장 원인에 대한 객관적인 소견서를 요구해 하자의 종류가 대규모 수선에 해당하는지 세입자의 선관주의의무 위반이나 공용배관 하자는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며 “만약 세입자의 과실이 명백하거나 소규모 수선에 해당함에도 일방적으로 월세를 미납한다면 연체액이 2기에 달했을 때 민법 제640조에 따라 합법적으로 임대차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보증금에서 파손 비용 및 연체 차임을 공제할 수 있다.”고 전했다.
초여름 에어컨 누수 분쟁은 불쾌지수와 맞물려 서로에게 폭언을 쏟아내는 등 감정싸움으로 격화되기 쉽다. 무작정 연락을 피하거나 월세를 미납하며 감정적으로 대립하기보다는 고장 원인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후 법률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내용증명을 발송하는 등 체계적인 절차를 밟아 나가는 것이 각자의 재산과 권리를 지키는 현명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넷뉴스 박정우 기자(woo@e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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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고장 및 누수 분쟁, ‘집주인 대 세입자’ 배상 책임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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